기형도
김은 블라인드를 내린다, 무엇인가
생각해야 한다, 나는 침묵이 두렵다
침묵은 그러나 얼마나 믿음직한 수표인가
내 나이를 지나간 사람들이 내게 그걸 가르쳤다
김은 주저앉는다, 어쩔 수 없이 이곳에
한번 꽂히면 어떤 건물도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김을 중얼거린다, 이곳에는 죽음도 살지 못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것과 섞였다, 습관은 아교처럼 안전하다
김은 비스듬히 몸을 기울여 본다, 쏟아질 그 무엇이 남아 있다는 듯이
그러나 물을 끝없이 갈아주어도 저 꽃은 죽고 말 것이다, 빵 껍데기 처럼
김은 상체를 구부린다, 빵 부스러기처럼
내겐 얼마나 사건이 많았던가, 콘크리트처럼 나는 잘 참아 왔다
그러나 경험 따위는 자랑하지 말게 그가 텅텅 울린다, 여보게
놀라지 말게, 아까부터 줄곧 자네 뒤쪽에 앉아 있었네
김은 약간 몸을 부스럭거린다, 이봐, 우린 언제나
서류뭉치처럼 속에 나란히 붙어 있네, 김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아주 얌전히 명함이나 타이프 용지처럼
햇빛 한 장이 들어온다, 김은 블라인드 쪽으로 다가간다
그러나 가볍게 건드려도 모두 무너진다, 더 이상 무너지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네
김은 그를 바라본다, 그는 김 쪽을 향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긴다, 무너질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가
줄거운가, 과장을 즐긴다는 것은 얼마나 지루한가
김은 중얼거린다, 누군가 나를 망가뜨렸으면 좋겠네, 그난 중얼거린다
나는 어디론가 나가게 될 것이다, 이 도시 어디서든
나는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황할 것이다
그가 김을 바라본다, 김이 그를 바라본다
한 번 꽂히면 김도, 어떤 생각도, 그도 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김은, 그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나는 블라인드를 튼튼하게 내렸었다
또다시 어리석은 시간이 온다, 김은 갑자기 눈을 뜬다, 감자기 그가 울음을 터뜨린다, 갑자기
모든 것이 엉망이다, 예정되 모든 무너짐은 얼마나 질서 정연한가
김은 얼굴이 이그러진다
by ki hyung do.
korean poetry. grotesque realism.
some of the best stuff I've read in korean.
he passed away, after publishing one book of poems, at the age of 29.
it's a shame that people try to cover up the fact that he was gay, because it really had a huge influence on his works and his life. the moment you realize that, the poems mean something more. because he voiced his anguish, his hatred toward himself and the city - things he could not get rid of because they were who he was - in his words.
it's extremely fascinating. i can't wait until i get back home and read some more of his works.
무너질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가.
how delightful it is to still have something that could be destroy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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